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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co Yoshida (요시다 케이코) - Depois Da Banda Passar (퍼레이드가 끝난 뒤)
퍼레이드가 끝난 뒤 ~ 나라 레옹을 노래하다. 씩씩하면서도 조용하게 소곤거리는 듯이,
요시다 게이코의 나라 레옹의 주옥같은 레파토리를 노래한 최신작
나라가 노래한 삼바와 마르샤를, 심플하고 섬세한 감각으로 조용하게 노래하는 요시다 게이코

브라질 음악의 소중한 재산을 자비롭고 소곤거리는 듯한 소리로 노래하는 보사노바 칸송 가수, 요시다 게이코의 최신작. 그녀는 앨범마다 자신의 생각을 선곡에 반영하고, 오래된 브라질 명곡들을 자신의 섬세한 소리와 사운드로 새롭게 소생시켰왔다. 본 앨범의 테마는, 나라 레옹의 사후 20년(2009년 6월 7일)을 추모하여 구성한 레파토리이다. 나라 레옹은 보사노바의 뮤즈로서 명성이 높지만 보사노바 뿐만 아니라 프로테스트 송, 삼바, 브라질 북동부의 음악 등을 소개한 아티스트이다. 나라 레옹의 음악세계를 동경해오던 요시다 게이코가 보사보바 넘버가 아닌, 나라 레옹이 부른 삼바와 마르샤(브라질판 행진곡)에 착안하여, 그녀다운 보사노바와 칸송의 감각을 담아 표현, 소프트하면서도 씩씩한 세계를 구축하였다. 프로듀스 편곡은 사사고 시게하루가 담당. 나라 레옹 앨범에서 들을 수 있는 편곡과 분위기를 상상하면서, 심플하고 음수를 적게 하면서 에센시브하게 표현하는데 성공하였다. 퍼레이드와 같은 시대를 앞질러간 나라 레옹, 그 정신을 자신의 독창성이기도 한 씩씩한 조용함으로 훌륭하게 오마주 작품으로서 성공시킨 걸작반이다.

라이너 노트

“요시다 게이코, 위대한 나라 레옹을 노래하다”
요시다 게이코(Yoshida Keiko)/ 퍼레이드가 끝난 뒤

사람들에게는 각자 자신만의 영웅이나 우상이 있고 또 삶에 있어 롤 모델이 되는 인물들이 하나 둘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들이 성장기에 들었던 누군가의 음악은 영양가 높은 자양분이 되고 이렇게 확립된 음악관은 또 이후 세대 음악인들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이처럼 누군가의 음악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한 창작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몇몇 뮤지션들은 이러한 영향을 보다 구체적이며 직접적인 방법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바로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음악인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오마주(Hommage), 즉 ‘트리뷰트 앨범(헌정 음반)’을 내는 것이다. 그리고 국외는 물론 이제 국내 음악계의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리바이벌’ 역시 넓은 의미의 트리뷰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뮤지션에게 있어 음악적 뿌리는 중요한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는 평소 몰랐던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음악적인 영향이 우선하겠지만 더불어 삶적인 면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보사노바를 접하게 되어 이젠 보사노바 전문 보컬리스트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요시다 게이코.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요시다와 보사노바의 드라마틱한 인연은 이후 그녀의 삶을 통째로 뒤바꾸어 놓고 말았는데 보사노바에 빠져든 요시다는 급기야 브라질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요시다는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 미우통 나시멘투(Milton Nascimento), 주앙 질베르투(Joao Gilberto), 마리아 크레우사(Maria Creuza), 엘리제치 카르도조(Elizeth Cardoso), 딕 파니(Dick Farney) 등의 음악을 통해 보사노바의 매력을 발견해 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녀가 가장 존경하고 지대한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라면 바로 ‘보사노바의 뮤즈’로 칭송받고 있는 나라 레옹(Nara Leao)이다. 국내의 보사노바 팬들에게 레옹의 이름은 그리 친숙한 편이 아닐 텐데 이유야 어찌됐건 요시다를 통해 우리는 레옹을 알게 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보다 특별한 유대감을 느끼고, 또 함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라 레옹은 1942년 1월 19일 브라질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레옹은 10대 시절부터 음악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당시 로베르투 메네스칼(Roberto Menescal)과 함께 기타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레옹이 가수로서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그녀의 집이 일종의 음악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한 탓이 큰데 그녀의 집-혹자는 레옹의 집을 ‘보사노바의 발상지’로도 평가하기도 한다-에는 많은 뮤지션들이 드나들었고 레옹 역시 이들 음악인들과 친해지면서 자연스레 보컬리스트로 활동을 하게 되었다. 레옹은 낮에는 신문사 기자, 밤에는 브라질의 의식 있는 젊은 뮤지션들과 교류해나갔는데 비브라토가 없는 메마른 듯 한 그녀의 창법은 레옹 이후 등장하는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Astrud Gilberto)라든가 마리아 베타니아(Maria Bethania) 보다 앞선 것이었다. 이렇게 브라질 음악 신의 신성으로 떠오르던 레옹은 1964년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브라질의 음악인들은 예술 검열과 경찰의 폭력 앞에 억압받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적잖은 뮤지션들이 해외로 피신하거나 망명, 혹은 활동 대신 침묵으로 일관하기도 했다. 이때 레옹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는데 1965년 리우의 극장에서 공연하던 중 “(지금의) 보사노바에는 브라질의 사회현실이 어느 것 하나 반영되어 있지 않다”라고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공연을 중도하차 한 것이 그것이다. 이후부터 레옹은 사회성이 강한 프로테스트 송-Protest Song, 60년대 중반 당시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브라질 군부의 폭정을 노래로 알리자는 운동-을 부르기 시작했고 트로피칼리아-Tropicalia, 장르적 편견 없이 브라질 음악에 영미의 팝, 락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을 더해 새로운 음악 전통을 만들자는 운동-같은 브라질 음악 운동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더 이상 ‘보사노바 뮤즈’가 아닌 민중의 편에 서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요시다는 이번 앨범을 기획하며 바로 이점을 분명히 했다. 본작이 레옹의 사후 20년이 되는 지난해에 때를 맞춰 발표되었지만 요시다는 보사노바 뮤즈 레옹이 아닌 그 이면의 것을 담고 싶었다고. 요시다가 노래하는 레옹의 노래들은 삼바와 마르샤로 당시 브라질의 군사정권에 대항하던 민중의 삶을 대변하는 곡들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본작을 보다 면밀히 감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곡이 만들어진 배경과 작곡가 그리고 가사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앨범 작업을 위해 요시다는 레옹의 수많은 곡들 중 몇 곡만을 골라야 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앨범에 실린 곡들의 면면을 볼 때 아주 탁월한 선곡이라 평할 수 있겠다. 요시다는 64년에 발표된, 레옹에게 있어 이정표와 같은 ‘Opiniao’를 비롯해 ‘A Banda’ ‘Pedro Pedreiro’ ‘Maria Joana’ ‘Diz Que Fui Por Ai’ 등 그야말로 레옹의 대표곡이자 의미심장한 가사를 담고 있는 14곡을 본작에 포함시켰다. 또한 레옹은 젊고 유능한 작곡가들을 발굴하는 혜안을 가졌던 것으로 유명한데 시쿠 부아퀴(Chico Buarque)가 그 중 한 명이다. 나라는 부아퀴의 곡들을 가장 빨리 소개한 장본인으로 본작에는 이런 부아쿠의 곡들이 다수 실려 있다(14곡 중 무려 6곡이나 수록).

한편 요시다는 본작을 기타리스트 사사고 시게하루(Shigeharu Sasago)와 함께 작업했는데 사사고는 레옹이 생전에 일본을 찾았을 때 같이 공연했던 바 있는 뮤지션. 참고로 레옹은 64년과 85년 두 차례 일본을 방문했고 89년에 다시 방문해 대규모 공연을 할 예정이었으나 병으로 쓰러져 그만 6월7일에 별세하고 말았다. 요시다는 이런 사사고가 자신과 레옹 사이를 적절히 조율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사사고는 기타 연주뿐만 아니라 앨범의 프로듀서로서의 역할까지 도맡아 요시다의 ‘나라 프로젝트’를 물심양면으로 서포팅하고 있다. 사사고 외에도 퍼커셔니스트 오카베 요이치(Youichi Okabe), 플롯 연주자 야마카미 히토미(Hitomi Yamakami)가 연주를 하고 있는데 비중이나 주도적인 곡 전개를 맡고 있는 것은 역시나 사사고의 낭랑한 기타반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요시다는 듀엣으로 녹음되었던 ‘Noite Dos Mascarados’를 위해 이즈카 히토시(Hitoshi Izuka)를 초빙, 그와 입을 맞추고 있기도 하다.

사실 요시다와 레옹, 그리고 본작에 수록된 곡들에 대해 더 자세히 소개해야 옳을 텐데 할애된 지면 관계상 앨범에 대한 대략적인 스케치로 대신했음에 양해를 부탁드린다. 본 글은 레옹에 대해 지극히 일부만이 기술되었음을 밝히는 바이며 각 곡에 대한 요시다의 코멘트가 어느 정도 미흡한 부분을 보충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만약에 본작을 듣고 레옹이라는 브라질 여성 보컬리스트에 새롭게 알게 되거나, 또는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면 아마도 애초 요시다가 가졌던 기획 의도는 성공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다. 요시다와 팬들 간에 레옹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공유하게 됐으니 말이다. 끝으로 요시다가 레옹한테 전하는 한 편의 편지(?)를 소개해볼까 한다. 내용은 짧지만 이 글에는 레옹에 대한 요시다의 생각이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60년대 고통스런 군사정권하에서는
아름답기만 하던 보사노바를
더 이상 노래하지 않았던 나라.

이야기하듯 자연스러운 그녀의 가성은
시간을 넘어, 거리를 넘어,
브라질에서 멀리 떨어진 일본의 나에게
노래라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이 앨범은 나라 레옹에
정말 많은 감사를 담아.
사후 20년, 2009년 봄에.
- From 요시다 게이코

글/ 강대원 (엠엠재즈 필자/ 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