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근 - 바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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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근 새 앨범이 들려주는 노래와 풍경 이야기>
-친구나 엄마 같은 포근한 ‘느낌’이 좋다-
가수 박창근 새 앨범이 곧 나온다. 총 9곡의 음원을 담은 이번 앨범은 ‘느낌’에 충실한 듯 가볍고 자유롭다.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며 그 가운데 시원한 실바람이 분다. 노래 한 곡 한 곡은 기억과 꿈, 옛사랑, 기다림 등을 그림 그리듯 노래한다. 특히 <바람의 기억>과 <독백>, <그대 내 사랑을 받아주오>를 듣고 있으면 편안하고 포근하다. 감정이나 목소리 톤을 보면 ‘해먹’에 누워 단잠을 자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따뜻하고 좋다. 사실, 바로 직전 앨범(None Grunge 2013.03)을 들으며 이 사람 무슨 일 나는 거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새 앨범은 날 선 무거움을 벗어 던지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풍경 같다. 편곡 스타일뿐만이 아니라 전이되는 감정의 선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다행이다. 물론 가수로서 박창근의 테두리에 제자리는 없고 경계는 끝이 없어야 한다. 그 동안 어쿠스틱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통해 김광석을 노래하고 이야기했던 박창근이다. 하지만 김광석은 김광석일 뿐. 박창근은 자신의 목소리를 고집하며 복원한다. <어느 목석의 사랑>은 뮤지컬의 대표적인 곡이 될 정도로 많은 공감을 불러왔다. 원래 2집에 실려 있던 이 곡은 가장 대중적인 색깔을 갖췄다. 이 노래는 <바람의 기억>과 함께 새 앨범의 중심을 이룬다.
<바람의 기억>은 종종 무대에 선보였다. 노랫말은 “그대도 나처럼 외로운지”, “지금은 어디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그 시절 때 묻은 책 한 권에 인생을 말하고 철학을 논하고” 등 우리 맘에 불던 바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묻는다. 바람은 어디서 비롯되고 어디로 가는 것인지, 마치 우리 인생과 닮아 있다. 그래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기억되고 기억하는 게 삶이 아니겠는가. <친구야>는 여전히 박창근이 가수이자 작가적 감수성을 지닌 한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고뇌하며 추구하는 ‘해답’은 고통, 총성, 죽음, 슬픈 운명 등을 관통한다. 해답은 질문과 궤를 같이 한다. 그래서 박창근이 <이유> 시리즈나, <저주>, <운명> 등에서 들려주고 있는 질문과 맥락을 같이한다. 다만, 이젠 좀 더 ‘친구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새 앨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노래는 <엄마>이다. <엄마>는 3분18초라는 짧은 곡인데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곡을 공연에서 짧게 듣고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다. 찬바람, 외투, 집, 그 밤, 작은 창, 단칸방, 가슴 속, 내 나이, 엄마 나이, 보고 싶고요, 미안하고요, 사랑하고요 등 몇 단어 안되는 가사는 후주로 이어지며 서서히 감정을 증폭시킨다. <엄마>는 마치 안치환의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이 두 노래는 발걸음 떼지 못하고 난간을 잡게 할 정도로 깊은 파장을 드리운다.
이외에 <노랑나비의 꿈>이나 <독백>은 꿈을 꾸듯 나른한 오후에 적격인 노래들이다. <노랑나비의 꿈> 멜로디는 정말 독특하다. 내가 마치 꿈과 현실에 경계에 들어서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독백>은 추억이 된 한 사람을 찾아 헤매는 격정적인 감정을 역설적이게도 매우 담담하게 ‘독백’하고 있다. 한편, 김광석의 <내가 필요한 거야> 공연실황은 씻어도 씻기지 않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모든 앨범은 오랜 기다림을 거쳐 창작의 고통을 뚫고 나오는 게 분명하다. 그건 분명 가수와 연주자 등 창작자들의 몫이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노래를 듣는 관객은 그러한 사정을 잘 알지 못하고 제대로 알 수 없다. 어설픈 공감은 오히려 사치가 아닌가.
이번 박창근의 새앨범은 여러 면에서 불필요한 껍데기를 다 걷어낸 것 같다. 형식에 갇히기 보단 그냥 옆에 같이 있어주는 친구나 엄마 같은 포근한 ‘느낌’이랄까. 새앨범은 그 어떤 수사학보다 노래의 원형(原形)에 더 어울린다. 노래란 결국, 편안함이고 따뜻함 아니겠냐는 뜻이다. 다만, 아쉬운 건 좀 더 많은 곡들로 새앨범이 채워졌더라면 하는 점이다. 2집, 3집은 곡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한 앨범에 담고 있다. 가능한, 그의 풍성한 감수성이 여러 노래들로 태어나면 좋겠다.
- 김재호-
(김재호 <교수신문> 학술 객원기자. 그동안 학술‧과학‧문화 부문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취재해왔다.
특히 하니리포터로 활동하며 진정한 노래는 과연 무엇인지 고민하고 취재했다.
현재 ‘학술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