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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 - 바흐, 부조니 편곡앨범 (Bach, Busoni : Piano Transcrip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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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에 대한 부조니의 시각.
편곡이라는 예술은 오랜 역사를 가졌으면서도 지난 백 여년 동안 그다지 명성을 누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편곡은 주목할 만한 유래가 있는 묘한 형태의 예술이다. 다른이의 작품을 다양한 악기를 위해 개조하는 작곡가들의 전통은 바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는 음악사에서 가장 다작한 편곡가였다. 19세기 경 난도질한 듯한 편곡과 진부한 오페라 메들리로 편곡에 대한 평가가 땅에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편곡의 계속된 전통은 바흐, 베토벤, 브람스와 같은 위대한 작곡가들에 의해서 가장 높은 예술의 기준으로 올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페루치오 부조니로 하여금 진정한 장인장신의 의무를 느끼게 하였다. 그는 자신의 선조들에 의해 계승된, 편곡이라는 예술의 가장 높은 이상에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바흐가 부조니에 미친 영향은 일생동안 계속되는 것이었다. 부조니는 편곡가로서의 활동을 통해서 연주만 하는 연주자에서 창조적인 인성의 깊은 곳까지 이를 수 있었다. 바흐는 부조니의 청년시절에 가장 잠재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다. 부조니의 청년시절 작품들은 대부분이 바흐 스타일이었고(가장 초기 작품은 지그, 가보트, 서곡, 푸가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초기시절부터 대위법에 대한 기호를 발전시켜 나갔다. 이러한 영향은 한 젊은 작곡가의 전형적인 모방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부조니의 창조적인 삶에서 계속되었고 그 자신 만의 개성적인 스타일로 완전히 흡수되었다. 부조니의 가장 중요한 오리지날 피아노 작품 중 두 가지는 모두 그의 우상에게 깊은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우선 [바흐를 따른 환상곡(Fantasia after Bach, 1909)]은 거의 절반정도가 완전히 오리지날 작곡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나머지 부분에서는 바흐의 세 오르간 곡을 사용했고, 다른 하나인 [대위법을 따른 환상곡(Fantasia Contrappuntistica, 1910]은 부조니 피아노 곡의 최고 걸작이다.
부조니의 바흐 편곡은 부조니가 성숙했돈 초기시절, 1888년(프렐루드와 푸가 D 장조 BWV532)과 1907-9년(이 음반에 녹음된 10개의 코랄 프렐루드)사이에 이루어 졌다. 이 작품들은 부조니의 초기시절 정점을 차지하며, 그의 높은 재능은 물론 독창적인 피아노 스타일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위대한 피아니스트, 작곡가, 편곡자일 뿐만 아니라 깊은 사상가로서 편곡 기술에 대해 몇 가지 중요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부조니는 작곡가의 마음 속에서 음악적 아이디어는 정해진 악기로부터 독립적인, 어떤 가공되지 않은 요소가 존재한다는 점과, 작곡가의 기술적인 부분이 이 요소를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도록 작업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기보 그 자체가 이런 추상적인 생각을 편곡한 것이다'가 이에 대한 그의 표현이었다. 그는 ‘첫 번째 편곡으로부터(추상적 생각의 기보) 두 번째 편곡(다른 작곡가에 의한 작품의 개조)으로 이르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과정’이라고 믿었다. 편곡이 악보의 순수함과 정통성을 침해하거나 작곡가의 신성한 권위에 대한 모욕적인 오염이라고 평가받고 있던 시절에 부조니의 견해는 별로 무게를 지니지 못했다. ‘정격연주’(‘우르텍스트(원본)’으로 구현되는 작가적 객관성에 근거를 둔 새로운 의견)에 대한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편곡의 상대적인 특징은 무시되고 위치는 더욱 낮아졌다. 최근에서야 편곡은 겨우 레퍼토리화 되었고, 특히 부조니의 편곡은 마땅한 주목과 존경을 받게 되었다.
바흐의 오르간 작품을 피아노로 표현하는 부조니의 테크닉은 정말 독창적이다. [토카타, 아다지오와 푸가 C 장조]를 포함하여 대규모의 오르간 작품에서 그는 오르간의 성격과 음역을 피아노로 잡아내는데 신경을 썼다. 오르간은 배음(倍音)의 풍부한 스펙트럼과 다양한 스톱(오르간에서 색채를 바꾸는 장치-역주)의 조합으로 인해 악보에 기록되어 있는 것보다 훨씬 넓은 음역을 가지고 있다. 부조니는 이러한 소리의 깊이를 재창조하려고 애썼고, 더블 옥타브 진행, 넓은 공간에서 공명의 사용, 화성의 강화 등을 통해 많은 부분을 성취할수있었다. 이런 점은 오르간의 효과를 모방하려고 할 때 조차 피아노의 본질과 개성을 담아낼 수 있었던 부조니의 가장 큰 성과이다. 부조니의 피아노 텍스처(구성요소)는 전부 그 자신의 것이며 이와 직접 비교할 만한 피아노 레퍼토리는 전혀 없다.
부조니의 [토카타, 아다지오와 푸가] 편곡은(부조니는 이 작품을 [프렐루드, 인터메조와 푸가]라고 다른 이름을 붙였다) 그의 많은 테크닉을 증명하는 좋은 예가 된다. 두 옥타브로 분리한 그의 공간은 오르간의 8-피트 스탑과 2-피트 스탑의 조합과 비슷한 독특한 공명을 만들어 낸다. 반면 다른 특징은 중간에 끼어 드는 더블 옥타브 진행으로, 텍스처의 무거움을 피하기 위해 연속된 베이스 음에서 모두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차적으로 이 더블 옥타브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전체적으로 그는 오르간의 텍스처와 상당히 멀다는 이유로 아르페지오(분산화음)를 사용하지 않는다.(어떤 화성의 분산화음도 없는 부조니의 바흐 편곡을 연주하기 위해서 피아니스트는 상당히 큰 손을 가져야만 한다) 피아노 언어를 완전히 숙달하고 있는 부조니의 이러한 방법은, 아다지오의 정적인 분위기와 푸가의 건축적인 움직임은 물론 모든 힘과 장엄함에서 바흐의 관념과 소통하고 있다.
부조니는 바흐의 코랄 프렐루드 10개를 편곡했지만 이 중 네 개 만이(2번-5번) 자주 연주되고 있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부조니는 바흐 원곡의 위엄, 억제된 비애감과 긴장감 등 적절히 친숙한 요소를 만들고 있다. 코랄 멜로디는 종종 명쾌함과 쾌할함을 위해 덧붙인 더블 옥타브로 연주되고, 장식음은 때로는 생략되고 때로는 첨가되어 대위법적 구성으로 엮어지며, 건반 위에서 두 손의 배치와 배분은 거의 천재적이다. [이제 오라, 우리 구주여]와 [주 예수여, 당신을 소리쳐 부르나이다]는 이러한 편곡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두 곡으로, 깊은 곳까지 미치는 통렬함으로 싸여있다. 가장 외향적인 두 코랄 프렐루드는 [성도들이여,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자]과 [주 안에 기쁨 있도다]이다. 전자에 대한 부조니의 편곡은 이 곡을 19세기에 깊이 뿌리를 둔 눈부신 연습곡으로 탈바꿈하여 모든 코랄 프렐루드 중에서 가장 급진적이다.
바흐의 솔로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2번 중 ‘D 단조 샤콘느’를 확대 편곡한 부조니의 작업은 그의 바흐 작품 편곡을 둘러 싼 논쟁의 중심에 놓여있다. 스스로의 말을 빌리자면 부조니는 ‘오르간의 관점에서 음색의 효과를 다루었다. 다양한 비난을 얻고 있는 이 방법은, 우선 바이올린은 완전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관념의 여유있는 폭과 두번 째로 바흐 자신이 바이올린 G 단조를 오르간 곡으로 편곡한 예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 바흐가 가졌던 관념의 폭과 전달수단이 되었던 솔로 바이올린의 한계 사이의 마찰은 작품의 본질적인 부분이 되고, 작품의 원초적 물리성, 서사적인 투쟁과 힘의 느낌을 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부조니 버전은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장엄하고 인상적이지만, 이 작품을 듣는다는 것은 원곡을 듣는 것과는 매우 다른 경험이다. 부조니의 편곡이 바흐의 원곡을 파괴하는 행위와 전혀 관계없고, 브람스의 왼손 만을 위한 원곡에 너무 충실한 편곡과는 달리 의미심장한 또 하나의 피아노 레퍼토리가 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이 편곡은 음역의 재배치, 텍스처, 공간, 공명, 템포 사이의 관계 변환, 바흐의 원곡만이 가지고 있는(때로는 부조니의 손에서 예고없이 드러나는) 화성의 깊은 이해에서 특히 급진적이다. 브람스의 편곡처럼 부조니는 시작 부분을 한 옥타브 낮게 가져가고 있다. 여기서 피아노는 바이올린의 가장 낮은 옥타브와 같은 풍부한 공명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부조니는 브람스와 달리 아르페지오를 피하고 공명과 다이내믹을 단계적으로 변화시킴으로서, 바이올린보다는 오르간의 색채를 창조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화음은 가장 권위있는 방법으로 구체화된다. 규모가 큰 오르간 편곡과 관련된 많은 테크닉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으며, 전체적인 효과는 청중을 압도한다. 피아니스트로부터 사랑받고, 순수파로부터경멸을 당하는, 한 위대한 음악가의 심오한 예술 작품에 대한 부조니의 강렬한 주관적 반응은, 말 그대로의 편곡이 아니라 급진적인 재작곡의 의미가 담긴 개인적 견해와 이해를 조망하고 있다.
글: 팀 패리
이일후, 옮김
백건우
한국의 대표적인 피아니스트 중 한명인 백건우는 서울에서 출생하여 열살 되던 해에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데뷔했고, 뉴욕의 줄리어드에서 로지나 르바인, 런던에서 일로나 카보스에게 사사하였다.
백건우는 리스트, 부조니, 스크리아빈, 라벨, 메시앙 등의 작곡가의 특별한 해석가로 스스로를 만들어갔다. 뉴욕의 앨리스 툴리 홀과 베를린 필하모니 홀에서 라벨의 전작품들을 연주하여 갈채를 얻었으며, 파리와 런던에서 연주한 여섯 개의 리스트 시리즈 리사이틀은 르 마탱 지로부터 “초자연적인 항해, 그는 청중들로 하여금 작품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 가장 근본적인 맥을 읽고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평가를 이끌어 내었다. 그라모폰과 함께 대표적인 음반 전문지로 일컬어지는 팡파레는 백건우의 리스트 레코딩을 부조니가 남긴 연주(“작곡가의 비전을 강화한 것”이라는 평가를 얻은)와 비교하면서 “잔물결이 가득한 뉘앙스와 황홀함의 윤곽을 갖춘 경이로운 해석의 [메시스토 왈츠], 힘찬 호흡, 조각된 듯한 울림, 놀라운 격동을 갖춘 [바흐의 이름을 따른 환상곡과 푸가]에서는 하나하나의 소리와 세세한 부분까지 모습을 갖추어 전체의 기념비적인 모습을 이루고 있다”고 극찬하였으며, “혹시 백건우가 새로운 부조니는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백건우는 지금까지 세계적인 페스티발에서 수많은 유명 오케스트라와 연주하였고, 그 중에는 1987년에는 런던의 유명한 프롬나드 페스티벌의 절정인 마지막 날에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2000년 9월에는 한국인 예술가로서는 처음으로 중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초청을 받아 중국 국립 오케스트라와 그리그와 라흐마니노프 등을 연주하였다. 그는 1995년부터 지금까지 예술감독으로 프랑스 디나르의 에머랄드 코스트 페스티벌을 이끌면서 미하일 루디, 지안 왕 등의 저명한 연주자를 초청하고 있다.
그의 다른 음반으로는 스크리아빈, 라벨의 전작품,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가 지휘하는 모스크바 라디오 필하모닉과 협연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안토니 비트가 지휘하는 폴란드 국립 라디오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프로코피프 협주곡 전곡(이 음반은 1993년 황금 디아파송 상과 누벨 아카데미 뒤 디스크의 그랑프리를 받았다) 등이 있다. 현재 그는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200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화 기사 훈장’을 얻었으며, 올 하반기에는 쾰른, 밀라노 등에서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바하에 대한 부소니의 시각
편곡이라는 예술은 체크무늬와 같은 역사를 가졌으면서도 지난 백여년 동안 그것에 대한 평판은 결코 변함이 없었다. 그럼에도 편곡은 주목할 만한 유래가 있는 묘한 예술의 형태이다.
음악 역사에 있어서 가장 다작한 편곡가 - 바하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다른 악기로 다른이의 작품을 개주한 작곡가들이 여럿 있을 정도로 편곡의 전통은 화려하다.
19세기경, 난도질한 듯한 편곡과 진부한 오페라틱 메들리로 편곡에 대한 평가가 땅에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편곡의 계속된 전통은 바하, 베토벤, 브람스와 같은 위대한 작곡가들에 의해서 가장 높은 예술의 기준으로 올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페푸치오 부소니로 하여금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정신을 느끼게 하였다. 그는 자신의 선조들에 의해 계승된 편곡이라는, 예술의 가장 높은 이상에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바하가 부소니에 미친 영향은 일생동안 계속되는 것이었다. 부소니는 편곡가로서의 활동을 통해서 연주만 하는 연주자에서 자신의 창조적인 인성의 깊은 곳까지 이를 수 있었다. 바하는 부소니의 청년시절에 가장 잠재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다. 부소니의 청년시절 작품들은 대부분이 바하 스타일과 비슷한데 부소니의 첫 번째 작품인 지그, 가보테스, 서곡, 퓨지스가 대표적이다.부소니는어렸을 적부터 대위법적인 표현을 좋아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영향은 한 작곡가의 젊었을 적, 전형인 모방을 끌어내기에 절대 충분했다.
그러나 부소니는 단순한 모방자로 그치지 않았고 그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여 창조적인 삶을 지속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오리지날 피아노 작품 중 두가지 - theFantasiaafterBach(1909), the Fantasia Contrappuntistica(1910)는 둘다 부소니의 우상에 의해 깊은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첫 번째 작품 the Fantasia after Bach(1909)은 절반정도가 거의 오리지날 요소로 구성되어있으나 세 개로 분리된 바하의 오르간을 사용했고 두 번째 the Fantasia Contrappuntistica(1910)는 부소니의 피아노 작품중 규모가 큰 대형 작품이다.
부소니의 바하 편곡은 1888년(the Prelude와 Fugue in D, BWV532)과 1907-9년(the ten preludes recorded here)사이 부소니가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다. 어렸을 때 편곡한 곡들은 부소니의 유소년을 대표하는 것들이고 그것들은 부소니가 가지고 있던 높은 독창적인 피아노 스타일과 잠재력있는 그의 재능을 드러내 주었다. 그는 위대한 피아니스트, 작곡가, 편곡자일 뿐 아니라 또한 깊은 사상가였다.
그는 편곡에 대해 몇 가지 중요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 부소니는 악기적 구현으로부터 벗어난 아직 가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음악적 이상이 존재한다는 것과, 작곡가의 스킬적 부분은 이 창조적인 이상을 반영하는 방법으로서 만들어내는 것이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보법 그자체로 추상적인 생각을 편곡한 것이다'라는 말은 그의 이러한 생각을 나타내주는 대표적인 것이다. 그는 첫 번째 편곡(추상적 생각에 대한 기보법)에서 두 번째(다른 작곡가에 의해서 작품이 개주되는 것)이르기까지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믿었다. 편곡이라는 자체가 원문을 침해하고, 신성한 작곡가로서의 위엄이 부패된 분야로서 평가받고 있을 시기에 부소니는 그것에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다.
진정한 연주에 대한 주장이 대두되고, 원문과 편곡의 상대적인 성질에도 불구하고 편곡의 위치는 더욱 낮아졌다. 단지 최근에 편곡은 존경할 만한 재입된 레파토리를 가진 것으로 그중 특별히 부소니의 편곡은 마침내 주목을 받았고 존경할 만한 것으로 평가 됐다.
바하의 오르간 작품을 피아노로 나타내는 부소니의 테크닉은 정말 독창적이다. 규모가 큰 오르간 작품중(the C major Toccata and Fugue) 부소니는 오르간의 범위와 성질을 피아노로 잡는데 관심을 가졌다. 매우 풍부한 음조의 단계와 다른 스텝으로 다양한 조화를 이루는 오르간은 악보에 기록되어 있는 것보다 훨씬더 넓은 범위를 포함하고 있다. 부소니는 이러한 소리의 깊이를 재창조하려고 했고 옥타브 더블링, 공명의 행간 분배, 하모니의 강화를 통해서 마침내 그것을 성취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부소니가 오르간 성질을 그대로 담아내려고 시도하는 중이었음에도 피아노의 개성과 본질을 담아내는 그가 성취한 것의 가장 핵심인 것이다. 부소니의 피아노 원문은 전부 그 자신의 것이며 직접적으로 비교할 만한 피아노 레파토리가 없다.
'the Toccata, Adagio, Fugue'(부소니는 이것들을 Prelude, Intermezzo and Fugue라고 다시 타이틀을 붙였다.)에 대한 부소니의 편곡은 그의 테크닉을 증명하는 좋은 예가 된다. 그가 생각한 분리된 두 옥타브의 공간은 독특한 공명을 나태내는데, 이 공명은 오르간의 8번 스텝과 2번 스텝의 조화와 비슷하다. 또 다른 특징은 중간에 개입된 옥타브 더블링이다. 이것은 연속적으로 옮기는 베이스 옥타브기 더블링되는 모든 지점마다 하는 것이 아니라 원문의 무거움을 피하기 위해서 단지 한쪽에만 적용된다. 부소니의 창조적인 부드러운 페달 사용은 오르간의 다른 스텝의 대조되는 공명을 모방하기 위해서 사용한 다른 방법이다. 그리고 그는 어떤 분산 화음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러한것들은 오르간과완전히 다른 텍스쳐인 것이다. (코드의 어떤 분산 화음도 없다면 피아니스트는 부소니의 바하 편곡을 연주하기 위해서 아주 큰손을 가져야만 한다.) 부소니는 바하의 컨셉과 교통하는 그의 피아니스틱적인 작풍으로 자신만의 편곡법을 완성하였다.
부소니가 바하의 합창 서곡중 10개를 편곡했지만 단지 네 개만이 연주되고 있다. 그것은 대부분의 작품에 대해서 부소니가 적당하게 친밀한 배경을 설정하고 위엄과 억제된 비애감 그리고 바하의 독창적인 부분의 긴장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합창곡 멜로디는 자주 명백함을 위해서 덧붙인 옥타브로 연주되고 꾸밈은 상세히 전부 나타내지는데, 이런 식으로 짜맞쳐진다. 두 손사이의 피아니스틱적인 설계와 배분은 종종 천재적이다. Nun komm der Heiden Heiland and Ich ruf zu dir, Herr Jesu Christ 는 이러한 편곡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두가지이며 깊은 곳까지 느끼게 하는 통렬함으로 덮어져 있다. 가장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합창 서곡 두 가지는 Nun freut euch, lieben Christen gmein and In dir ist Freude이다. 사실 부소니의 'Nun freut euch'에 대한 편곡은 모든 합창 서곡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부소니의 'D minor 샤콘느' 중에서 부연된 것이 있는데 그의 바하 편곡들 중에 논쟁거리로 가슴속에 남아있다. 사실 이것은 더블 편곡인데 부소니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오르간 음조의 견지에서 개조된 음조 효과이며. 이 과정은 처음에 컨셉의 폭에 의해서 조절되고 두 번째로 바하 자신의 G minor 바이올린 fugue의 오르간에 대한 편곡중에서 스스로 설정된 예시로 조절된다'고 한다. 많은 청취자들을 위해 바하의 컨셉의 폭과 솔로 바이올린의 한계 사이의 마찰은 작품 본질의 부분이 되고 그것의 원초적 물리성과 비상한 노력, 힘의 감각을 첨가한다. 부소니의 버전은 인상적이며 부정할 수 없는 위대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듣는 다는 것은 오리지날을 듣는 것과 매우 다른 경험이다. 부소니의 편곡은 바하의 독창성을 파괴하는 부분이 전혀 없으며 브람스의 문자그대로의 편곡과 다르다. 그것은 피아노 레파토리에 분명하게 첨가하기 때문이다.
부소니의 편곡은 원문, 공간, 공명, 템포의 관계성을 변형시키고 오리지날에 단지 내재하여 남아 있는 하모니들의 완전하게 구현하는 정말 혁신적인 것이다. 브람스의 편곡처럼 부소니는 한 옥타브를 낮게 오프닝을 했다. 그 오프닝 속에서 피아노가 가지고 있는 바이올린의 가장 낮은 옥타브와 같은 풍부한 공명을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부소니는 브람스와는 다르게 공명의 변화, 고압적인 기법속에서 드러나는 코드와 같은 오르간의 소리 세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여기서 규모가 큰 오르간 편곡과 관련된 많은 테크닉을 발견할 수 있으며 청중을 압도하는 효과들을 감상할 수 있다. 한 위대한 음악가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일어난 편곡에 대한 반응은 편곡이라는 한 형태가 원문을 베낀다는 차원이 아니라 근본적인 재구성한다는 이해를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