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푸하 - 칼라가 없는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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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에 대한 진솔한 고민들, 황푸하 정규 1집 “칼라가 없는 새벽”
황푸하는 생명의 만연함을 초대하는 희망과 동시에 숭고한 죽음의 깊은 신비를 동시에 한 작품 안에 담았다. 그럼으로써 삶과 죽음을 하나의 그림으로 보는 인식을 갖고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고자 하였다. 내일의 이상에 대한 희망, 오늘의 슬픈 현실에 대한 자각, 어제의 손실에 대한 안타까움 등 사유의 감정들이 곡마다 모방되어 살아있는 채 배치되었다.
대부분의 곡은 통기타의 아르페지오 연주와 황푸하의 멜로디로 흘러간다. 그 위에 연주되는 바이올린 선율은 목소리와 조화를 이루며 멜로디를 풍부하게 살려준다. 어쿠스틱한 구성 뒤에서 공간감을 가득 채워주는 rainbow99의 일렉기타 소리로 인해서 듣는 이로 하여금 그 곡이 표현하는 역동적 에너지로 장소를 이동시켜 곡의 의도를 완벽하게 이뤄냈다. 생명이 만연한 숲 속에서 모든 공간을 점유해버리는 아침 햇살을 노래한 “해돋이”에서는 그 현상 자체를 연주로 담으려는 노력이 있었다. 한 박자씩 늦어지는 베이스 리듬은 메아리를 표현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채 연주되는 드럼은 아침을 향한 가슴 벅찬 희망을 연주한다. 일렉기타는 새소리와 태양의 힘찬 빛 줄기까지 표현하며 숲 속의 모든 생명을 깨운다. 황푸하는 모든 공간을 단번에 비추는 해돋이의 순간 그 자체를 “해돋이” 곡 안에 옮겨놓았다.
황푸하는 ‘음유’(吟遊)의 시인이고 ‘은유’(隱喩)의 시인이다. 살면서 마주하는 일상은 흑백의 필름 속으로 사라져 가는데 그는 그 속을 떠돌아다니며 화려한 칼라필름으로 시를 짓고 읊는다. 차분하면서도, 때론 격정적으로 회한 없이 과거와 원초적 기억을 더듬어낸다. 아련한 그리움,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처음의 나, 삶의 본질... 그것들을 더듬어 가는 음유 시인의 노래에는 진한 은유가 있다. 그의 노래에는 ‘페르소나’ 뒤에서 울고 있는 나에 대한 은유가 있다. 홀로 세상에 내동댕이쳐졌으나 함께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 그리고 서툴기만 한 관계맺음... 좋은 사람이고 싶은데, 모두에게 착한 마음이고 싶은데... 하지만 나는 여전히 서툴고 우리의 관계에는 늘 상처가 난다. 그래서 내 안의 나는 언제나 울고 있다. 사회적 가면 뒤에 울고 있는 민낯, 시인은 꾸미지 않은 그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본다. 외면하고 싶었던 그 얼굴을 보려한다. 그래서 그의 노래에는 위로가 있는가보다. 그도 사랑을 노래한다. 하지만 그의 사랑 역시 은유다. 떠남에 대한, 자유에 대한 은유다. 유난히 세상을 무서워하고 내일을 걱정하며 미리 울던 자신의 사랑에게 옆에 있어주겠다고 한다. 그 아픈 사람에게 푹 빠졌다고 실토한다. 그리고 힘껏 안아주겠노라 다짐한다. 꽃 한 송이 꺾어 주는 이 철없는 사내를 사랑하지 않을 여자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아이는 직감적으로 안다. 모든 꽃들은 언젠가 시들고, 모든 사랑은 결국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가고야 만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그는 당위가 아니라 관계를 원한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자유로운 관계 맺음을 그는 갈구한다. 일상의 음유 속에서 우주의 은유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정말로 뜻밖의 선물이다. 그의 노래에는 우리의 문명에 대한 깊은 통찰과 우주에 대한 은유가 있다. 인간이 두 발로 걷기를 그만두면서 탈것에 몸을 싣기 시작한 이후,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고 시내와 자갈밭도 있는 오솔길이 아니라 직선으로 쭉 뻗은 고속도로 위의 미친 경주, ‘매드 맥스’가 되었다. 오직 출발점과 도착지밖에 없는 도로... 그 속에서 나는 뒤차에 쫓기고 옆 차에 쫓기다 결국 나 스스로에게 쫓긴다. 그래서 우리의 새벽은 칼라가 없는 흑백의 새벽, 무상과 체념과 고독의 하루가 되어 생명력을 잃었다. 시인은 이제 그만 여기서 내리자고 한다. 답답한 자동차에서 내리자고 한다. 속도만이 아니다. 어둠을 잃어버린 빛의 문명 속에서 시인은 피곤에 지친 우리를 잠으로 청한다. 잠이 부족한 시대, 쫓기는 수험생과 직장인과 주부들에게 감히 오후 2시의 나른한 낮잠을 청한다. 어둠이 건네준 평안, 우린 그것을 잊은 지 참으로 오래다. 빛의 공해, 광란의 스피드에 시달리는 우리들에게 시인은 잠시 쉬었다 가자 청한다. 대신 그는 다른 빛을 이야기한다. 멀미나는 자동차에서 뛰쳐나와 하늘로 날아오른 시인은 내 안의 나에서 눈을 돌려 우주를 본다. 그리고 그토록 기다리던 빛이 이미 만물을 환히 비추고 있음을 본다. 그 빛은 공평한 빛이다. 가난한 집에도 골고루 비추는 따스한 빛이다. 그래서 축제가 시작된다. 그토록 기다리던 신의 은총인가? 우주에 충만한 사랑, 편만한 신의 숨결을 시인은 현란한 기타 스트로크로 그려낸다. 온 우주를 손가락으로 지은 신의 섭리를 흉내 내려는 것 같다. 더욱 화려한 빛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진다. 빛이 울려 퍼진다니, 시각의 청각화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귀로 듣게 만드는 천재적 은유시인이다. 그리고 “여기 오소서”라고 노래한다. 흑인노예들이 타는 목화밭에서 불렀던 ‘쿰바야’를 이 땅에도 그리고 깊은 바다 속에도 오라고 노래한다. 그의 노래에는 하늘의 위로와 생명의 아름다움에 대한 짙은 은유가 있다.
장윤재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Credit
Vocal, Acoustic guitar – 황푸하
Drum – 서형석
Bass – 심호근
Piano – 윤재호
Electric guitar – Rainbow99
Violin – 황예지
Trumpet – 지석구